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이 안전보건 예산을 어떻게 편성하고 집행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제4호는 예산 편성 자체보다 '용도에 맞는 집행'을 더 엄격하게 요구한다는 점을 아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핵심은 예산을 편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유해위험요인 제거·대체·통제에 사용되었는지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전보건 예산,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왜 이렇게 강조될까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을 의무로 규정합니다(법 제4조 제1항 제1호). 이 의무를 구체화한 시행령 제4조 제4호는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장비 구비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고 그 용도에 맞게 집행하도록 요구합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이 예산 의무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산업안전보건관리비'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건설업에서 흔히 오해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배포한 '중대재해처벌법 중대산업재해 질의회시집'에 따르면, A사 대표이사 K는 산업안전보건법 기준에 따라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안전관리자 인건비, 안전시설비 등으로 집행했다는 증거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제4호의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의무는 건설공사 발주자에게 부과된 의무이고, 중대재해처벌법상 예산 편성 의무는 경영책임자 개인에게 부여된 별개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편성해야 하는 예산은 산업안전보건관리비에 국한되지 않으며, 관계 법령에 따라 의무적으로 갖춰야 할 인력, 시설, 장비 구비를 위한 모든 비용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실제 재해 사례에서 드러난 예산 편성의 핵심 실수
실제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이해해 보겠습니다. ㈜A는 J시 보유 시설 개선공사를 도급받아 그중 토공사를 ㈜B에게 맡겼습니다. ㈜B 소속 근로자 L은 공사 현장에서 가시설 용접 작업을 하던 중, 터파기 작업을 하던 굴착기 뒤 통로로 지나가다가 회전하는 굴착기와 통로 벽 사이에 협착되어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A 대표이사 K는 산업안전보건법 기준에 맞춰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계상하고 집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적 판단은 달랐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예산 편성 의무는 사업장의 실제 유해위험요인을 발굴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도록 충분히 편성되고 집행되었는지를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유해위험요인의 발굴과 개선 노력이 기업에 과도한 경영상 손해를 가져올 정도까지 요구되지는 않지만, 후순위로 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의 핵심 취지입니다. 이 사례에서 K 대표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라는 기존 틀에만 맞췄을 뿐, 현장의 실제 위험(굴착기와 작업자 동선의 분리 미흡)을 해결하기 위한 별도 예산 편성이나 집행 증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산 항목, 이렇게 구분하면 실무에서 헷갈리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예산 항목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고용노동부의 '대표이사의 안전보건계획 수립 가이드'에서 제시한 9개 항목과, 실무에서 많이 참고하는 '중대재해처벌법 따라하기'의 5개 분류를 함께 활용하면 효과적입니다.
고용노동부 가이드 기준 9개 항목 - 안전보건 목표 및 방침 - 안전보건 조직 및 인력 - 안전보건 예산 - 안전보건 교육 - 위험성 평가 - 비상조치 계획 - 안전보건 점검 및 감독 - 도급·용역·수급인 관리 - 안전보건 관계 법령 준수
실무 분류 5개 항목(인력 및 시설, 안전, 보건, 기타, 예비비)
이 두 기준을 모두 활용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예산을 항목별로 편성하는 것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각 항목이 실제 유해위험요인 발굴과 개선으로 이어졌는지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안전분야' 예산에 작업발판 설치비를 편성했다면, 실제로 작업발판이 설치되었고 그 결과 추락 위험이 제거되었다는 현장 사진이나 점검 기록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예산 편성보다 더 중요한 집행 관리, 이렇게 해야 법적 리스크를 줄인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제4호를 위반하는 가장 흔한 패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유해위험요인 제거·대체·통제를 위한 예산을 아예 편성하지 않은 경우. 둘째, 예산은 편성했지만 용도에 맞지 않게 집행한 경우입니다.
특히 두 번째 경우가 더 위험합니다. 예산 편성 내역만으로는 법적 방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작업발판이나 안전난간 설치에 필요한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자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넘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집행 관리에서 반드시 확인할 사항 - 편성된 예산이 실제로 유해위험요인 제거·대체·통제에 사용되었는가 - 예산 집행 내역과 현장 개선 결과가 일치하는가 - 예산 사용 후에도 위험이 남아 있다면 추가 보완조치(교육, 점검, 방호조치, 작업절차 변경 등)가 이루어졌는가
만약 유해위험요인 제거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종사자 교육과 다각적인 점검, 방호조치, 작업절차 변경 등 보완조치를 해야 합니다. 단, 이러한 조치는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관리방법이라는 점을 반드시 유의해야 합니다. 위험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예산 확보를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합니다.
Q.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예산은 최소 얼마 이상 편성해야 하나요?
법령에 최소 금액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기업마다 유해위험요인의 종류와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사업장 특성에 맞게 합리적으로 편성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썼는가'보다 '유해위험요인을 발굴하고 개선하는 데 충분한 예산이 편성되었는가'입니다.
Q. 산업안전보건관리비만 제대로 쓰면 중대재해처벌법 예산 의무를 지킨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산업안전보건관리비는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 발주자 의무에 가깝고, 중대재해처벌법상 예산 편성 의무는 경영책임자 개인에게 부여된 더 넓은 의무입니다. 관계 법령에 따라 의무적으로 갖춰야 할 인력, 시설, 장비 구비를 위한 모든 비용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Q. 예산을 편성했는데 실제 사용 실적이 부족하면 문제가 되나요?
네, 문제가 됩니다. 예산을 편성했더라도 용도에 맞게 집행되지 않았다면 시행령 제4조 제4호의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편성-집행-개선 결과가 모두 연결되어 증명되어야 합니다.